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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는 것이 좋을까?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6-26 09:41:57 조회수 293

햇병아리 정신과 전공의 시절, 주변에서 의사라고 하면 무슨 과를 하냐고 물어보곤 했다.
어느 분의 대답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정신과를 하세요? 아니, 그 정신 나간 사람들이 뭐가 좋다고.’
주변의 반응에 씁쓸했었다.


이십 년이 지난 지금은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해마다 정신과약물은 새로운 이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약물의 효과도 뛰어나다.
하지만, 여전히 똑같은 질문을 듣는다.

원장님 자녀라도 꼭 이 약을 먹이겠습니까?

이 질문에 햇병아리 시절에는 큰 목소리로 ‘그럼요. 당연히 먹이죠.’라고 대답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노련한 의사가 되어 처방약이 과연 안전한지 확인하고 싶은 환자분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다.
“요즘은 약들이 너무 좋아져서 말이죠.”라고 웃으면서 약의 효과와 주의사항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간다.


약 이름은 모르더라도 혈압 약은 평생 복용하고 알 수 없는 한약성분이 몸에 좋다고 드시는데 정신과 약은 왜 거부감부터 생길까.


오래전 할로페리돌 성분의 치료제가 고용량 처방되었을 때 침을 흘리거나 잠을 많이 자거나 걸음걸이가 둔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은 할로페리돌은 최신 약물로 대체되어 부작용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약물을 거부하다가 치료시기를 놓치게 되어 인지, 정서,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병전으로 회복되지 못한다.


사진출처 :정신의학신문


명문대를 다니는 여대생이 있었다.

말이 많아지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잠을 몇 달씩 못 자도 단지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들도 항상 모범생이었던 딸에게 정신과 약을 먹일 수 없다고 했지만, 곧 우울증이 찾아오면서 조울증, 즉 양극성장애를 진단받게 되었다.


양극성 장애는 신경전달물질의 변화를 동반하고 생리주기와 연관이 있기도 하고 수면장애를 초반에 잘 잡아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대학에 다니더라도 학부를 졸업하지 못할 수 있고, 취업이나 결혼을 하지 못하고 집에서만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
조금만 자기 고집을 버리고 약을 초기에 먹었더라면 훨씬 수월하게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저 혼자 힘으로 먼저 해보겠습니다.”라고 약물 복용을 거부하였다.

이렇게 환자가 약 복용을 거부하면 억지로 먹일 방법이 없다.
대부분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
내 몸이 병든 것은 그럴 수 있지만, 마음의 병은 의지가 약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분은 약을 먹는 그 순간부터 환자가 되는 것 같다고 하신다.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말씀드린다.

“약을 먹어서 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을 먹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분들이 더 많이 있다.
오히려 환자라고 인정하고 약을 먹는 분들은 피해자가 많다.
때리는 남편은 치료를 받지 않지만, 매 맞는 아내가 병원에 온다.
알코올 중독자는 병원을 거부하지만, 오히려 배우자나 자녀들이 치료받으러 온다.
가해자보다는 피해자들이 약을 먹는다.”


이십 년간 폭식증으로 고통 가운데 있었던 한 여성이 폭식증 치료제를 먹고 나서 폭식증과 우울증이 사라졌다.

“약을 먹고 이렇게 좋아질 수 있는데 식욕조절 하나 못하는 나를 너무 못살게 굴었어요.
지금은 오히려 폭식증이 고마운 거 있죠?
덕분에 정신과에 와서 상담도 받게 되고 예전보다 저를 더 잘 알게 되었어요.
폭식증이 없었다면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조차 없었을 거예요.
정신없이 살아온 저에게 정신과 상담은 사치였겠죠.”

어찌 보면, 정신과 상담을 받고 정신건강을 챙긴다는 것은 개인의 깨어있는 인식과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필요로 하는 ‘럭셔리’이다. 럭셔리는 명품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것은 정신과 약물을 과용하거나 의존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프로작’이라는 항우울제가 있다.

1980년대부터 만병통치약처럼 우울장애, 불안장애, 강박장애, 식이장애, 월경전 불쾌장애 등에 처방되어 왔다.
시대마다 유행하는 전염병이 있었듯이 현재 사회 시스템이 특정 정신질환을 부추기고 있다.

더 이상 한 개인의 연약한 의지와 대뇌 신경전달물질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프로작을 생산하고 쏟아 붓기 전에 한 개인의 가치가 무시당하고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사회 전반적인 문제들이 하나씩 해결되어야 한다.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가 공황장애와 불면증의 유병율과 연관이 깊고, 스마트폰 중독과 주의력결핍장애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유행하는 것을 개인의 의지가 약하다고만 할 수 없다.

혼자의 힘으로 해볼 수 없는 거대한 사회적 문제들을 알약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자료출처 및 작성자 : 정신의학신문 / 유은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작성일자 : 2019.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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